요즘 어드벤처 게임이 망해가는 방식인 이 모든 걷기 시뮬레이터 컨셉을 내가 자세히 살펴봤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거기에 있는 거라곤 게임플레이 없이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대화와 컷씬을 찾아 빈 공간을 돌아다니는 것뿐. 모범사례로는 에브리바디 곤 투더 랩처, 곤 홈, 스탠리 패러블, 에단 카터의 실종 등이 있고 더 옛날로 가보면 더 패쓰와 데이빗 케이지의 이력서에 있는 대부분의 게임들이 포함되지.

걷기 시뮬레이터는 확실히 좋은 대접을 받는 장르가 되어가고 있는데, 내 냉소적인 영역은 (큰 영역이다) 게임플레이나 도전할 수 있는 요소 같은 것도 없고 상호작용하는 요소도 없이 개성없는 주인공을 조종하며 공간을 돌아다니는 것밖에 없는 게임이 디자인하기 꽤 쉽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지. 처음부터 내 패를 보여주고 말하자면, 나는 그 어떤 걷기 시뮬레이터도 좋아한 적 없고, 예외적으로 스탠리 패러블은 좋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뮬레이터 게임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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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할 건 뭐 있냐고? 그것들은 지루하고, 지극히 중요한 스토리는 내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충분히 흡입력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나는 도전을 원한다. 동굴 이야기 비디오를 보충하는 엑펑에서, 어드벤처 게임이 생명력을 잃게 된 원인들 중 하나로 인터넷에서 해결 방법을 찾기 너무 쉬워져서 게임이 지속력을 잃었음을 꼽았다. 그 후, 어드벤처 게임은 두 갈래로 나아갔는데, 어떤 게임들은 액션 어드벤처의 영역 안에서 변화하여 도전의 측면을 발전시켜 서로 일회용 퍼즐 답을 알려주는 시끄러운 대화들이 줄고 게임플레이 팁을 교환하는 소음이 늘어나게 되었다. 탐험과 세계관 형성에 공을 들인 상당히 도전적인 게임으로서 다크 소울은 그 스펙트럼의 맨 끝에 자리잡고 있다.

한편, 다른 게임들은 논리적으로 반대쪽의 방향으로 발전했는데, 짧고 직선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 게임의 지속력 부족을 받아들이며 두 손 들고는 모든 도전들을 없애버렸다. 계획이야 완벽하지. 내러티브는 고전 어드벤처 게임에서 언제나 강점이었고 필수적인 아이템 수집 퍼즐은 언제나 짜증나는 거였으니, 당연히 날려버려야지.

하지만 나는 게임 스토리에는 어떤 종류의 도전이 있어야 한다는 논쟁적인 발언을 하려 한다. 단지 '게임'은 당신이 승리하는 경쟁이라는, 단어 의미를 따지는 논증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게 우리에게 유별나게 복잡한 일시정지 버튼을 쓰는 영화보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게임 기기'를 사용하는 건 뭐든지 '게임'이어야 한다는 고집을 지키며 전통에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게임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페이스 조절과 역경. 첫째로, 페이스 조절은 스토리 창작자가 스토리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될지, 설명이 얼마나 제시될지, 어떻게 주인공이 돌아다닐지를 제어함을 뜻한다. 이건 분위기와 톤을 만듦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재료들 중 하나다. 영화와 책과 같은 규격화된 매체 양식은 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창작자가 모든 것을 전적으로 지배하니까. 모든 것은 저자의 능력(책의 경우), 감독의 능력(영화의 경우), 필요성은 제각각인 스무 명의 한 무리 젊은이들의 능력(헐리우드 영화의 경우)으로 요약된다.

비디오 게임에는 그러한 아주 기본적인 필수요소, 자연스럽게 스토리 페이스를 조절할 능력이 없다. 창작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최종적으로 플레이어를 제어하는 것뿐. 플레이어가 전적으로 자유롭다면 그들은 엔딩을 보려고 항상 사기를 칠 거고 어떤 방식으로든 스토리를 보강하기 위해 신중하게 배치된 많은 것들을 놓칠 것이다. 친구들이여, 여기가 도전이 들어설 자리다. 도전은 비디오 게임 제작자들이 자연스럽게 경험을 구성하는 도구다. 그게 어떤 구역에 입장하기 전에 승리하기 충분할 정도로 능해야 하는 싸움이 되었든, 주변을 신중히 조사하고 무엇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퍼즐이 되었든 말이다.

  
  
 

내가 언급한 또다른 한 가지는 역경인데, 모든 스토리에는 극복하려면 발버둥쳐야 하게끔 캐릭터에게 작용하는 어떤 도전이나 부정적인 상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걸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에브리바디 곤 투더 랩처는 '않든' 진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 플레이어는 이 스토리 속의 캐릭터이다. 그러니까, 사람들 또한 그들만의 발버둥치는 역경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반드시 스토리의 중심 인물이 될 필요는 없겠지만, 관객의 시점에서는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사실 창작자는 플레이어가 곧바로 그들이 플레이하는 캐릭터인 아바타를 자신들과 동일시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우리는 마틴 맥플라이와 루크 스카이워커 같은 캐릭터들을 우리들과 동일시하고, 승리하기 전에 극복해야 하는 역경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만족을 준다. 그러니 게임 속 플레이어 캐릭터는 그들만의 역경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스토리 속 사건들은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없다.

결론은, 당신은 관객이 집중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거다. 당신은 규격화된 스토리를 사용할 수 있다. 관객이 집중할 수 있는 다른 요소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으니: 상호작용 내러티브 체험에 의존하는 건 너무 불안하고, 도전을 추가함으로써만 관객을 다시 집중시킬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비디오 게임의 스토리가 전달 매체로서 여전히 도전에 의존하는 이유다.

이 모든 게 개인 취향에 달려있으며, 걷기 시뮬레이터 게임이 용감하게 장르의 선봉에 서서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려 노력한다고 말할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 내게 그건 위협적이다. 이보게, 그건 별개의 이야기고, 내 사고방식과는 도무지 안 맞는다고. 거기에 해 줄 말은 이거다, 족까. 에브리바디 곤 투더 랩처가 위협적이었다면 나는 즐거웠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았고. 뭐가 내게 위협적인지 아나? 총을 든 해골들이다. 에브리바디 곤 투더 랩처에 총을 든 해골이 하나라도 있나? 아니 없지. 여기서 얘기는 다 끝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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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scapistmagazine.com/articles/view/video-games/columns/extra-punctuation/14547-Yahtzee-On-Everybodys-Gone-To-The-Rapture-and-Gone-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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