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그럼, 찍겠습니다. 하나, 둘."


찰칵.


내일은 이도영 씨가 돌아오는 날. 그 날에 대비해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실은 도영 씨한테 줄 인형을 사 주고 싶었는데, 그게 맞춤형이라서 내가 직접 모델로 나서는 것이다. 물론 아침에 내가 아빠한테 요청해서, 하교하는 길에 왕궁에 들른 것이다. 옷차림은 학교에서 입던 교복 차림 그대로다.


"미사키 공주님, 다음 스타일 준비해 주세요."


사실 내가 선물할 인형은 하나가 아니라 여덟 개다. 내 것은 물론이고 분신들 것까지 인형으로 만들어 주려는 거다. 다만 분신들은 이미 도영 씨랑 같이 있으니, 내가 분신들 몫까지 맡는 수 밖에 없다. 일단은 샤우라 스타일로 해야지. 어떤 스타일이었더라, 양쪽으로 살짝 묶은 거였나.


"정 귀찮으시면 베이스만 찍으셔도 돼요."


그냥 머리 풀은 채로 찍어도 괜찮다신다. 하지만 인형들 머리를 내가 묶어줘야 하는 부담이 따라오니 그냥 밀던 대로 가기로, 아니, 일단은 베이스부터 찍어놓고 그 다음부터 각자의 스타일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윽고 촬영이 재개되었다. 우선은 머리를 완전히 풀어헤친 기본 스타일부터 다시 찍었다. 기본 스타일은 인형들의 머리카락 길이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니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진행할 스타일 중에서는, 역시 벨의 스타일이 낫다고 생각했다. 벨은 평소에도 머리를 별로 묶지 않으니, 삐죽빼죽 튀어나오게만 하면 된다. 덤으로 바보털도 장착, 곧바로 두번째 스타일 완성.


세번째 부터는 트윈테일 분신들의 턴이다. 우선은 부부 부터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에, 양쪽으로 머리를 짧게 묶었다. 이렇게 묶으니 왜 부부가 항시 이런 스타일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곧바로 세번째 스타일 완성. 네번째인 유니코 스타일은 여기서 머리카락만 좀 더 늘어뜨리면 완성이다. 곧바로 찰칵.


다섯번째인 라이오 스타일 부터는 거울을 동원해야 하기에 조금 힘들어졌다. 메이드 분들이 나서겠다고는 했지만, 내가 직접 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냥 나 혼자서 하겠다고 단언했다. 이전 두 스타일에 비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어찌됐든 라이오 스타일 완성. 여섯번째인 샤우라 스타일은 라이오의 것에 비해 좀 더 뒤로 묶은 것이라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이 정도면 되려나. 곧바로 찰칵.


일곱번째 부터는 포니테일 분신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다. 레비와 이나리는 묶는 방향이 반대이고, 레비가 오른쪽이니 이나리는 왼쪽. 우선 레비의 방향으로 묶어보고 하나 찍어보았다. 그 다음은 반대 방향인 이나리 방향, 그리고 찰칵. 마지막으로 중앙으로 묶는 내 스타일. 내 방식대로 다시 묶어서는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기본 스타일을 포함해 8명의 스타일까지 모두 찍었다.


곧바로 사진을 확인해 보았다. 사진사 할아버지의 조수가 내 사진들을 확인해 보고 있었다. 물론 출장 오신 인형 제작사 언니와 함께, 나도 사진을 지긋이 보고 있었다. 분신들의 스타일은 물론 평소 짓는 표정까지 따라 지으려고 억지를 부린 게 확연히 드러난다. 한참을 살펴보던 와중에, 분신들 눈동자가 갑자기 생각났다. 조수가 8번째 사진에서 넘기려던 순간, 내가 2번째 사진부터 다시 보자고 했다. 기본 스타일과 내 스타일은 눈동자 관련해서 건드릴 것이 없으니 다시 보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8번째까지, 눈동자 색깔을 바꿔주세요. 눈동자 색은 ….


60


노트북 같은 휴대기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전자제품은 모두 처분했다. 겨우 해가 중천에 뜬 것 뿐인데, 벌써 지친다. 나 혼자 지친 게 아니라, 다른 애들 역시 지쳐서 내 방에서 뒹굴고 있다. 대충 점심도 먹었겠다. 낮잠이라도 잘까 생각하던 순간 어디선가 문자가 떴다. 무슨 메시지이길래 하고 확인해 보니까 여권 찾아달라는 메시지다. 여권만 찾으면 내일 출국 가능하다는 말이다. 낮잠 청할 시간도 없고, 미사키들 깨울 시간도 없다. 그냥 나 혼자 채비해야지.


아파트의 1층으로 내려갔는데, 아직 국왕님이 계신 건지 경로당 앞에 경호원이 둘 있다. 내가 지독하게 언급하던 커플 경호원도 같이 있다. 일단 경로당부터 가서 경호원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그제서야 경호원들이 움직인다. 그리고는 곧바로 나오시는 국왕님.


"무슨 일인가, 도영 군?"


여권 찾아야 한답니다. 문자로 왔어요. 그러자 국왕님도 나갈 채비를 하신다. 아니, 꼭 같이 가실 필요는 없고, 저는 운전사 정도면 충분합니다만. 국왕님은 그냥 제 집에서 푹 쉬고 계시기 바랍니다. 맞다. 미사키들도 잠시 부탁해요. 그러자 약간 당황하시는 국왕님. 하지만 분신이라고 해도 딸은 딸이니 알았다는 말을 남기신다. 아차, 호수하고 도어 키 비밀번호를 전달하지 않았네. 차에 타려다 말고 국왕님께 가야만 했다.


다시 차에 타고 달리기를 한 시간, 드디어 도청에 도착했다. 운전사가 여성 경호원이라 썸이라도 타고 싶었지만, 업무에 방해가 될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애초에 내가 탄 좌석이 뒷좌석인지라 썸을 탈만한 포지션도 아니다. 차가 도청 문 앞에 도착하자 내가 곧바로 내렸다. 차문을 닫자, 검은 색 자동차는 어디론가 차를 댄다. 신경 쓸 거 없다. 빨리 가자.


여권 찾으러 왔습니다. 이 말과 함께 나는 곧바로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담당 공무원은 잠시 여권 묶음을 풀더니 나의 이름이 적힌 여권을 찾기 시작한다. 그 동안 나는 이전 여권을 찾아봤지만, 안 갖고 왔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전 것은 어떻게 처리하냐고 물었지만, 그냥 알아서 안전하게 폐기하면 된단다. 조금 더 기다리고 받은 것은 새 여권. 더 이상 앳된 사진이 아닌, '오늘'의 내 모습이 박혀 있는 것이다.


여권도 받았으니 밖으로 나가서 차를 찾아 보았다. 그런데 그럴 필요도 없이, 검은 차는 아까 내렸던 그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소식을 나에게 전달했다. 이삿짐, 비자, 항공편 전부 준비됐다고 말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일은 내일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는 것 뿐이다. 그리고 왕국에서, 새로운 일을 찾아 시작하는 거다.


- Teritorio de Leontodo 3장 "민들레와 코스모스"(Leontodo kaj Kosmoso), 끝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 작가의 신년사 ~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에 치인 지 어느새 4달이 지났습니다. 동시에 2016년도 끝나갑니다.

처음 미사키들을 봤을 때에는 무슨 여자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들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7인의 나나> 이후로 이렇게 제대로 치인 적은 없었더라고요.


더불어, 약칭 <성하동 민들레>라는 말에 그대로 낚여, 실제로 상주시 성하동까지 다녀왔습니다. 비록 여기에다 글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 속에는 어느새 민초(民草)가 피어나 있더라고요. 짓밟혀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민들레 말입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단델리온>을 통해 '정치'를 다시 보겠다고.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니, <새로운 정치>가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미사키의 공약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즐겁게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요."


이제 24시간이 지나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6년이 끝납니다. 그리고 2017년이 밝아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헬조선의 실체가 수면으로 떠오른, 정말이지 지옥같은 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짓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민초와 같이, 온갖 역경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 그리고 혼자서 다시 일어설 수 없다면, 도움을 통해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테리토리오 데 레온토도'<Teritorio de Leontodo>가 시작된 이유입니다.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2017년, 정유년(丁酉年)이 시작됩니다. 더불어 <테리토리오>의 4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됩니다. 지금까지가 <테리토리오>의 준비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단델리온>의 아홉 남매가 역경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그 드라마틱한 여정을, 끝까지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 2017년 1월 1일 0시 특별 연재를 시작으로, 2017년 부터는 전일 오후 11시에 업로드하겠습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