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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벨', '사쿠라다 미사키'의 먹보 속성이 드러난 분신이지. '돼지 보스'라고? 말도 안 돼. 나는 '먹요정'이거든요♡

아무튼 오늘은 미사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컷 점심을 먹을 수 있었어. 튀김을 빼고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메뉴인지라 내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지.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처음 먹어서 그런지 너무 맛있당. 다만 순대는 생긴 게 까매서 조금 무섭다. 처음에는 손에 대지 않으려 했지만 도영 씨가 '블랙 푸딩'과 비슷한 음식이라고 했다. 푸딩! 내가 좋아하는 푸딩! 소화 잘 되는 푸딩! 하지만 이내 안에 들어간 생김새에 실망. 그래도 맛있긴 하다.

튀김은 더더욱 '서민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수준. 이모가 특별히 바삭하게 튀겨주어서 그런지 매우 맛있다. 김밥 역시 내가 먹었던 김밥과는 다른 맛이 있다. 이것은 미미(美味).

무엇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묵국수'와 '잔치국수'. 특히 '묵국수'는 '정말 이 음식을 먹기 위해 이 나라에 왔구나'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부드러움은 푸딩 이상이면서도 상당히 고소한, 그야말로 천상의 맛. 게다가 국수처럼 얇게 썬 생김새까지! 그렇다고 '잔치국수'도 포기할 순 없었지. 한 젓가락 입에 무니… 대박, 이것도 처음 보는 맛이다. 그러자 이모가 한 마디 던지신다.

"맛있어?"

넹. 저~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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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 2그릇, 8천원
떡볶이 2그릇, 6천원
순대 3그릇, 9천원
튀김 10개(2인분), 5천원
어묵 10개(2인분), 5천원
김밥 4줄, 8천원
묵국수 2그릇, 8천원

다 해서 4만 9천원, 사례금이랍시고 받았던 5만원을 거의 다 써버렸다. 내가 시킨 것을 빼고도 4만원은 이미 넘었다. 이게 다 돼지 보스 부부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대체 7명이서 얼마나 먹은 건지. 중간에 내가 뺏어 먹기는 했지만, 부부가 아니고서는 대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들 배가 미치도록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대체 얼마나 먹었더라, 아주 아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사키들도 지금 보니 아지매가 따로 없다. 몸빼 바지라도 사 줘야 하나, 이 아지매들. 안 그래도 저 옆 가게에서 팔고 있던데.

아무튼 산 만하게 먹은 음식을 소화하려면 역시 그거다. 공원 산책. 그러고 보니 여기서 좀 더 내려가면 또 다른 공원이 있지. 거기로 가면 괜찮겠다. 그나저나 대충 몇 분 걸리더라. 운동장 까지 하면 대강 25분 정도 걸리겠네. 시청 끼고 가면 좀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미사키들을 데리고 걸어간 길은, 시청을 끼고 지나가는, 상당히 한산한 길이다. 근처에는 학교 하나 안 보이고, 조금 더 걷자 깡촌이 따로 없는 길. 그런 길을 얘들이랑 같이 올라가고 있다. 안 그래도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 라이오 만큼은 지치지도 않는다. 유니코 마저 잠깐 쉬어 가자는 말을 하는데, 혼자서 앞장서서 가고 있다.

야, 그러다 길 잃으면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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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어디로 가면 되죠?

도영 씨가 별 걱정을 다 하고 있다. 그냥 갈림길이 나온다 싶으면 물어보면 되는 걸 가지고 말이다. 그나저나 벨은 오늘도 또 저런다.

아무튼 내 이름은 '라이오', '사쿠라다 미사키'에서 갈라져 나온 분신 중 하나이지. 체육 하면 유니코와 쌍벽, 리더십에서는 미사키와 쌍벽이올시다. 따라서 미사키 없는 곳엔 내가 왕이로소이다…라 대놓고 얘기했다가 결국 유니코한테 한 방 맞았다.

"뭔 뚱딴지 같은 소리래."

미안.

아무튼, 그렇게 유니코와 투닥대며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바로 앞에 철제 아치가 보이니 여기가 목적지인 듯 하다. 조금 더 걷고 있는데, 잠시 화장실 가고 싶다 말하는 도영 씨. 도영 씨 따라 다른 애들도 뒤따라 간다. 유니코와 나만 남아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는데, 저기 계단은 뭐지?

계단을 올라가자 트랙으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길이를 보니 대충 150 미터는 되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유니코가 트랙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질 수 없음.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둘 다 전속력으로 뛰었지만, 유니코는 금방 지쳐가고 있었다. 아니, 지쳤다기 보다는 귀찮아졌다 해야 하나. 하는 수 없이 나 혼자라도 뛰어야 되겠네. 한 5바퀴 정도 뛰고 보니까 유니코는 이미 근처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대?"

이윽고 다른 애들을 데리고 오는 도영 씨. 유니코는 쉬는 데에 여념이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뛰고 있었다. 운동장 중앙까지 가서는 달리기 하고 있었냐고 묻는 도영 씨. 이윽고 내가 대답하자, 도영 씨 역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나와는 딱 반 바퀴 차이를 두고서 말이다.

"가끔씩, 이렇게, 뛰는 것도, 나쁘진, 않더라."

가쁜 숨을 내쉬며 말을 거는 도영 씨. 나도 그 거친 숨소리에 화답했다.

스무 바퀴를 달렸을까, 슬슬 다리가 아프다. 더 달렸다가는 골치만 아파지니 쉬어야 되겠다. 도영 씨는 그냥… 안 보인다? 그런데 근처에 쉼터가 있다. 가 보니 역시나, 도영 씨는 쉼터 벤치에 누워, 바람 소리를 자장가 삼고 있었다. 근처에는 팔각의 식수대가 보인다. 한 번 놀려볼까.

"앗 차거!"

킥킥킥. 이렇게 놀려 먹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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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 그저 낮잠을 자고 싶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게다가 범인은 어제도 그랬듯 라이오. 얘는 참 악동 같아서 미치겠다. 아무튼 잠이 다 달아난 나머지 확 깨 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얼굴이나 씻어야지. 저번 처럼 라이오가 또 내 얼굴에 낙서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씻고 나서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유성 펜으로 그렸거나 아예 안 그렸거나, 둘 중 하나다. 휴대폰을 셀카 모드로 전환해 확인해 봤지만, 내 얼굴은 더럽혀지지 않았다.

카메라를 끄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2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 쯤이면 대충 녹화 끝난 듯 싶은데, 메신저 한 번 해 봐야 되겠다. 얘들아, 잠깐 미사키랑 얘기 좀 하고.

'생방 잘 끝냈어?' 전송.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원 포인트 Q&A
Q. 사이트가 문을 닫았을 때에는 기분이 어땠나요?
A. 연재 못해서 멘붕이었습니다. (ㅠ_ㅠ)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