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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 씨의 안내를 받아 따라간 곳은 이미 철거되고 있었다. 간판으로 추정되는 것도 이미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도영 씨 말로는, 여기가 바로 '민들레 영토'를 하던 곳이란다. 도영 씨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다.

참고로 내 이름은 '레비', '사쿠라다 미사키'의 분신으로 '질투의 화신'이기도 하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질투'라는 감정을 표출할 수 없었어. 무엇보다도 바로 옆에 있는 도영 씨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거든. 내가 뭐라 말하고는 싶었지만, 도영 씨는 그걸 바로 말렸고.

"별 수 없지, 내가 결정한 건데."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건물이 철거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어. 중간에 공사하던 아저씨가 뭐라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고. 대신 도영 씨가 해명을 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긴 했더라. 곧바로 아저씨는 다시 자신의 일을 계속 하기 시작했고.

"…가자."

말 한마디를 무겁게 꺼내는 도영 씨. 어깨가 무거워진 게 눈에 보인다. 잠깐, 이대로 가도 되는 거에요? 그러자 어차피 때 되면 옮길 생각이었단다. 그러니까, 본점이 이사간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묻자 도영 씨도 일단은 긍정한다.

잠시 동네 한 바퀴 돌아보자는 도영 씨. 이에 따라 우리가 향한 곳은 경찰서와 우체국이 있는 동네다. 도영 씨 말로는 '성하동'이라는 동네, 이 곳은 성 아래에 있다고 해서 성하동(城下洞)이다. 도영 씨의 안내에 따라 길을 걷고 있었는데, 밑에 표시가 보인다. 옛날에 성이 있었다는 표시, 그리고 그 옆에는 민들레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대충 일고여덟 송이는 되어 보인다.

"이야. 얘들도 참 끈질기다."

가까이 가서는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에 놀라는 도영 씨.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렇게까지 민들레에 집착할 필요가 있냐는 내 질문에, 도영 씨는 극구 부정. 대신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을, 자신은 본받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카페 이름이 '민들레 영토'였다고.

이후 도영 씨를 따라 우리도 시장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그러한 정적을 깬 것은… 하필이면 부부의 뱃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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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해가 벌써 중천에 떴다. 마음이 많이 무거워서 성하동 탐방을 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부부가 배고프다는 신호를 내보낸다. 사실 나도 뱃속의 거지들이 막 밥 달라고 떼를 쓰더라. 기분 전환도 할 겸 뭐라도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에 돌아가면 먹을 게 많이 있겠지.

그 생각은 역시 옳았다. 5일장이 들어설 때만 볼 수 있는 온갖 먹을거리가 시장 중앙에 널려 있었다. 분식집도 보이고, 잔치국수 집도 보인다. 애석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묵밥은 찾을 수 없었다. 오늘은 묵밥 하는 이모님이 안 오셨나보다. 게다가 8명이 눌러 앉기에는 하나같이 자리가 좁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미사키들을 데리고 시장 건물 내의 분식 집에 눌러 앉았다. 처음에는 애들을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보시는 이모. 하지만 곧바로 시킬 메뉴를 정하라 하신다. 가만 있자, 얘들은 여기 글씨를 읽을 수 없으니 내가 번역해 줘야 되겠네. 그 와중에 옆에서 부부가 튀김 그림을 보고 황홀해 하고 있지만, 어차피 '그림'의 떡이다. 야, 내가 시킬테니까 좀 가만 있어라.

내가 메뉴를 묻자, 유니코는 잔치국수를 시킨다. 튀김과 더불어 사진이 붙어 있는 몇 없는 메뉴이니 유니코가 시킬만도 하다. (그런데 생각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 유니코. 그것만 먹으면 배 금방 꺼질텐데.) 이어 라이오는 붉은 액체에 떡과 어묵이 들어간 그것을 시킨다. 말이야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떡볶이다. 나머지는 아직 메뉴를 정하지 않은 듯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다.

내가 도와줘야 하나. 일단 내가 시켜야 되겠다. 순대 1인분에 튀김 1인분, 내장은 간만 빼고, 튀김은… 골고루 주세요. 그리고 곧바로 내가 메뉴 하나하나를 소개시켜 줬다. 내가 메뉴를 짚어서 그런지, 곧바로 나머지의 미(味)적 감각이 발동한다. 레비는 순대, 물론 내장 옵션은 얘가 알 턱이 없었기에 내가 그냥 다 넣어달라 했다. 샤우라는 칼로리를 줄이고 수분 섭취를 늘리겠다는 이유로 어묵. 벨은 내가 대신 시켜서 김밥, 이나리는 히든 메뉴인 묵국수… 잠깐, 묵국수는 내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여기서 묵국수 파는 건 처음 봤고! 이내 이나리는 튀김 옆 구석에 있던 도토리묵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이나리는 어느새 이모와 자연스레 대화하고 있었다. 잠깐, 그렇다는 건 번역 따윈 필요없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마지막 주자인 부부는 촉이라도 발동한 듯 이것저것 다 콕콕 짚어본다. 앞서 말했던 7가지 메뉴, 전부 다 시키겠다는 뜻이다. 야, 혼자 다 먹을 수 있겠어? 이모가 크게 당황한다. 내 지갑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다른 미사키들은 이런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서 그런지 무반응이다.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원 포인트 Q&A
Q. 어떻게 <성 아랫마을의 민들레>를 알게 됐나요?
A. 알다시피, 미사키들 때문에-_-;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