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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리 7명을 경호하던 경호원 분들을 떠나보내는 도영 씨. 이내 내가 잠깐 물어봤다. 그러더니 도영 씨가 답하길, 시선 분산이 목적이래. 그리고 우리끼리는 시장을 가자고 했어. 나를 포함해서 다들 집에서 푹 쉬고 싶었다만, 도영 씨는 그러면 안된다며 굳이 시장으로 가자고 했지.

아차, 자기소개하는 걸 깜빡했네. 내 이름은 '사쿠라다 미사키', a.k.a. '이나리'. 쇼기 실력은 전국급에, 이제는 다수의 보드게임도 잘 알고 있지. 전에 미사키를 통해서 도영 씨에게 트로피를 보여줬던가? 그게 전부 내가 딴 거지. 한때는 보드게임 부에서도 대활약, 하지만 지금은 시오리를 간호하느라 부 활동을 잠시 접어두고 있어.

아무튼 자기소개는 여기까지이고, 지금은 다 같이 시장이라는 곳으로 가고 있어. 도영 씨는 잠시 또 다른 음악을 감상하기에 바빴고. 그나저나 이번엔 무슨 음악인지 해서 잠깐 엿들어 보았어.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음악인데, 조금은 오래된 듯 해. 나도 조용히 머릿속으로 되뇌어 보는데, 갑자기 도영 씨가 조용히 흥얼거린다.

"띵 땅땅 둥둥 땅땅 후루와~"(叮当当咚咚当当 葫芦娃)

내가, 아니, 미사키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음악인 듯 하다. 아마도 도영 씨가 꼬꼬마였을 적에 나왔던 것 같다. 어쩌면 도영 씨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왔을 수도. 곧 이어 다음 노래가 흘러 나온다. 이번엔 더 오래된 노래다. 얼핏 듣고 보니 많이 익숙한 듯 하면서도 다른 멜로디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도영 씨의 이어폰을 통해 노래를 몇 곡 더 들을 수 있었다. 중간에 도영 씨가 눈치챘지만, 이윽고 이어폰 한 쪽을 빌려준다. 뒤에서 유니코가 텔레파시로 스팸을 뿌려댔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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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시장이다. 노래 듣느라 정신 팔렸네. 아무튼 나는 곧바로 모두를 부르기에 바빴다. 벨은 또 곯아 떨어졌다. 얘 업는 것도 일이 될 것 같다. 여어, 얼른 일어나.

"학생, 빨리 안 내려?"

잠깐만요. 지금 얘(벨) 업고 있어요. 오죽하면 느긋하신 버스 운전기사 분도 재촉을 할 정도다. (내가 이 버스로는 단골이라서, 기사 할아버지하고는 구면이다.) 하여간 어지간히 무겁다.

우리가 내린 곳은 시장이 코 앞. 시계를 보니까 아직 10시는 되지 않은 시각이다. 5일장이 준비되고 있긴 한데, 거의 다 된 듯 싶지만 아직은 뭔가 엉성하다. 그러자 별 수 없다는 듯 길이나 걷고 보자는 라이오. 다른 미사키들도 동의하고, 나도 동의했다. 그러고 보니 시장에서 북쪽으로 좀 걷다 보면 공원이 있지. 내가 거기 가자고 제안하자 다들 동의했다.

시장에서 공원으로 가는 데에는 도보로 10분 걸린다. 다른 말 할 필요도 없이 이 쪽 지리에는 많이 익숙해졌으니까. 하지만 벨을 업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사키들에게 방향을 일러주었다. 여전히 내 등에 업혀 있는 벨 때문에 걸음걸이가 많이 느려져 있었다. 별 수 없다. 얘가 깰 때 까지는 이러고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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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z…. 어라? 잠에서 깨어 보니 어느새 도영 씨의 등에 업혀 있다. 일어났냐는 도영 씨의 말. 이에 깜짝 놀란 나는 등에서 스르르 내려왔다.

내 이름은 '벨'. '미사키'의 분신 중 하나로, 잠을 매우 좋아해.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잠이 많이 줄었어. 다 남매 일 때문이지. 참고로 내 담당은 아카네 언니. 할 일이라고는 언니의 상태를 점검하고, 밥 시간이 되면 밥을 주는 일 뿐.

아무튼 조금 천천히 걷자고 제안했지. 졸린 건 둘째 치고, 다들 애들도 인정하다시피 하고 있으니까. 그러자 도영 씨는 잠시 휴대폰을 보고서는 빨라졌던 걸음걸이를 다시 늦췄다. 내가 따라올 수 있도록 말이다. 다른 애들도 같이 걸음걸이를 늦췄다.

근처의 상점들을 둘러 보니까, 아직은 열지 않은 가게가 많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이 시간대에 문을 여는 가게가 많지 않다는 도영 씨의 말.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도영 씨가 있어서 다행이지, 우리끼리였으면 큰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왕산역사공원'이라는 곳으로, 묘비 같은 것이 세워져 있기에 약간은 으스스한 곳이다. 레비 역시 불안에 떨고는 있었는데, 그러자 도영 씨는 피식 웃으며 귀신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묘비처럼 보이는 것들은 사실 공덕비라고. 이윽고 바로 옆에서 얼굴을 씻는 도영 씨, 우리도 팔각의 세수대에 자리를 잡고 얼굴을 씻었다. 씻고 나니까 개운하긴 하더라. (화장은 하지 않아서 다행.) 곧바로 작은 정자에 가서 쉬자는 말을 던지는 도영 씨. 정자에 가 보니까 옆에 조그마한 연못이 자리잡고 있다.

정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다시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팬티 보일라 놀려대는 레비, 이윽고 도영 씨의 매를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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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 문 열었겠네. 가자.

벨이 누운 지 30분 정도 지났겠다. 지금 쯤이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열었으리라 판단했다. 그렇게 나는 미사키들의 임시 보호자를 자처하며, 천천히 중앙시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들른 곳은 그 길목에 위치한 옷가게, 여기서 미사키들의 옷을 사 줄 생각이다. 사실 여기가 시내에서 가장 큰 옷가게이다.

"어서와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주인 되는 이모 분이 살짝 당황한다. '7명의 미사키'가 와서 그런 것도 아니고, 7명의 '미사키'가 와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7명'의 미사키가 한꺼번에 와서 그렇다. 주인 분도 이렇게 손님이 많이 올 줄은 몰랐다고. 그러고 보니 나까지 해서 8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는데도 여기 주민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더라. 장날 시장까지 왔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몇몇 꼬꼬마 애들이 신기해 하며 바라볼 뿐.

아무튼 미사키들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옷을 골라주고 번역을 맡는 건 언제나 내가 담당이다. 그러는 와중에 이나리가 하얀 맨투맨을 발견했다. 뒤편으로 보이는 곳에는 크고 심플하게 '8'이라고만 적혀 있고, 앞에는 같은 글씨가 조그맣게 나 있는 옷이다. 더불어 이나리가 고른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파랑 글씨. 이에 레비는 이나리의 것보다 더 짙은 글씨의 옷으로 핏을 맞춰 보는데, 핏이 애매하단다. 이나리도 그렇고 레비도 애매하다 하고… 모델 핏이라 불릴만한 녀석이….

있었다. 그것도 바로 옆. 샤우라, 네가 한 번 입어봐.

샤우라가 옷을 골라 피팅 룸으로 들어가자, 나는 주인 분이랑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법 큰 가게라지만, 30평 남짓(굳이 다다미로 치면 60장 정도?) 한 옷 가게에 옷이 1000벌 넘게 자리잡고 있지, 그 자리에 주인에 다른 손님까지 포함해 열댓명이나 들어가 있지, 이 때문에 의자가 3개나 있어도 앉으려고 경쟁하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는 레비 마저 앉으려 하질 않는다. 그나저나 남성용은 없어요?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원 포인트 Q&A
Q. 어느 쪽 설정을 기반으로 팬픽을 쓰고 있나요?
A. 애니 쪽을 기반으로 만화 쪽의 것을 약간 섞어서 쓰고 있습니다. (졸지에 패럴렐 월드 ㅠ_ㅠ)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